부제목 - 태도에 관하여
이사님은 인천 본사에 있을때는 사장님의 눈치를 봤다고 했지만 현재는 중국공장에 있으므로 많이 자유로워했다.
하지만 일에 대한 태도가 나태해졌다거나 게으름피우는건 한번도 보지못했다.
언제나 출근시간보다 훨씬 일찍 사무실에 나와계셨다.
내가 출근해서 인사하러 2층에 있는 사무실에 올라가면 이사님은 언제나 책상에 앉아 납품일자가 적혀있는 주문장을 체크하고 있었다. 책상은 언제나 깨끗하게 정리정돈되어 있었고 뭐든지 항상 같은 자리에 반듯하게 놓여있었다.
그리고는 나를 데리고 생산현장을 한바퀴 돌아보기 시작한다. 중국인 직원들과 항상 웃으며 인사를 먼저 건네다보니 현장에서는 다들 이사님을 좋아라했다. 어쩌면 그들은 늘 함께 일하는 공장장보다 이사님을 더 좋아하는것 같았다. 나도 그런 이사님을 뒤따라 현장을 도는게 즐거웠다.
우리가 현장을 한바퀴 다 돌고 사무실로 돌아갈때면 그때에야 중국인 공장장이 출근을 한다. 늦게 나오면서도 불구하고 머리는 늘 까치집처럼 해가지고 출근했다.
이사님은 회사밖에서도 일에 대한 태도가 남달랐다.
언젠가 중국인 사장이 와이프와 아이들까지 데리고 와서 이사님과 함께 쇼핑하러 함께 가자고 했다. 통역인 나도 함께 따라갔다. 이사님은 뭐 특별히 사고싶은건 없다고 했다. 우리는 순덕시에 있는 어느 백화점에 갔다. 중국사장과 사모님은 쇼핑하느라 바빴다. 서로 티격태격하면서 쇼핑하는 모습이 왠지 애가 있는 부모라고 하기보단 철없는 신혼부부같아 보이기까지 했다.
가방을 판매하는 매장이 보이자 중국사장은 자신이 들고다닐 클러치백을 고르느라 여념이 없었다. 나는 그런 가방을 들고다녀본적도 없었고 또 워낙 비싸서 나하고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촌뜨기여서 그저 두리번 거리기만 하였다.
근데 이사님은 가방마다 살펴보며 가방에 달려있는 악세사리들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그러면서 나한테 그 악세사리들에 대해 설명을 했다. 이런건 금형에서 문제가 생긴거고 이런건 도장할때 기포가 들어간거고, 이런건 진짜 이쁘게 잘 만든거고, 우리회사에서도 더 다양한 디자인을 내놓아야 한다는 등등의 이야기를 했다.
중국인 사장은 와이프에게 자기가 고른 가방을 보여주며 이거 사면 안되냐고 졸랐다. 와이프가 실권자인듯 했다^_^
나는 중국사장과 이사님이 너무 대조되어 보였다. 중국사장은 자기가 가방악세사리 공장을 운영하지만 쇼핑에만 정신이 팔려있었고 이사님은 자신이 사장은 아니지만 악세사리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이사님의 일에대한 태도가 너무 존경스러웠다.
그날 이사님은 나에게 나이키 운동화 하나를 사주었다. 아마 내가 태어나서 처음 신어보는 나이키였을거다.
한국에서 새로운 악세사리 디자인을 보내오면 중국공장에선 금형을 떠서 샘플을 만들기 시작한다. 이사님과 과장님은 샘플을 만들때면 전과정을 세세히 체크했다. 어느 한곳도 소홀히 하지않았고 과장님은 도장도 직접했다.
그렇게 만든 샘플을 한국 본사로 보내서 검수를 받아야했다. 오케이 싸인이 떨어지면 대량 샌산에 들어가는 흐름이었다.
근데 그 당시에만 해도 샘플을 한국에 보내려면 너무 비쌌고 또 여러날 걸렸다. 그래서 이사님은 직접 공항으로 가서 인편으로 샘플을 보내기로 했다.
샘플이 나오는날 나는 공장의 운전기사를 불러서 대기시켰다.
이사님은 샘플여러개를 투명한 지퍼백에 넣은다음 누런색의 두꺼운 종이봉투에 넣었다. 우리는 회사차에 타고 백운공항으로 향했다. 공항까지는 멀었지만 나는 이 시간이 마치 여행을 가는 기분이 들어서 항상 즐거웠다. 광동성은 남부지방이다보니 길옆의 나무들이나 산에 있는 나무들은 항상 푸른잎이 우거져있었고 잎도 크고 넓었다. 동북지방에서는 볼수없었던 풍경이라 늘 신기했다. 공항가는길에 우리는 벽계원이라는 거대한 아파트단지를 볼수있었다. 이사님과 나는 그 거대함에 감탄했다. (훗날 벽계원이라는 이 부동산 회사의 회장은 자신의 딸에게 주식을 물려주었는데 젊은딸은 2007년 중국 최고의 갑부가 된적이 있다. )
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출국장 앞으로 갔다.
나는 이사님께 어떻게 하려는건지를 물어봤다. 이사님은 씩 웃으면서 잘보고 배워두라고 했다.
출국장으로 많은 여행객들이 들어갔다. 이사님은 그들중에서 한국사람을 한눈에 알아봤다. 그리고는 다가가서 정중히 머리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혹시 인천으로 가는거 맞으신가요?>>
<<아 네네...>>
대부분 사람들은 인사를 받으며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그러면 이사님은 명함을 꺼내주면서 설명했다.
저는 누구누구인데 이 샘플을 인천으로 가져다 줄수있냐고, 인천에 도착하면 저희 직원이 마중나와 있을거라고, 그리고 샘플을 꺼내보이면서 가방 악세사리인데 절대 걸리는 물건 아니니까 안심해도 된다고 ...
그러면서 다시 굽신굽신 인사를 하면서 부탁을 했다.
물론 출국하려는 사람들중엔 거절하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이사님은 또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 부탁했다.
나는 멀뚱멀뚱 서서 이사님을 바라보기만 했다.
처음에는 약간 창피하다고 느꼈으나 끝내 샘플을 맡아줄 사람을 찾아낸 이사님을 보면서 너무 멋져보였다. 내가 해낸것마냥 뿌듯하기까지 했다.
돌아오는 길에 이사님은 나한테 이렇게 말했다.
<<나중에 내가 한국에 돌아가면 네가 오늘처럼 공항에 와서 물건을 맡길수 있어야 해. 해보면 크게 어렵진 않아>>
하지만 그후에도 샘플보낼때엔 항상 같이 갔었고 나혼자 간적은 없었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굽신굽신 인사를 하면서 부탁하던 이사님의 일에 대한 열정은 잊혀지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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