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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만난 한국사람들

내가 처음 만난 한국 사람들 - 5편

by 빠라밤 2020.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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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쉬운일도 꼬이고 꼬여서 도저히 해결이 안되지만 반면에 어려운 일도  실타래 풀리듯 쉽사리 해결되기도 한다.

 

우리가 일하고있는 이 중국회사의 상품들은 한국으로 수출도 되지만  대부분은 중국내의 거래처들에 납품이 된다.그중에서도 생산물량의 반정도를 가져가는 큰거래처가 있었는데  이 회사의 검수팀을 통과하기가 매번 상당히 까다로웠다.

 

사장은 물론이고 밑에 있는 영업부서 직원들도 혀를 내둘렀다. 예전에는 검수팀 담당자와 사장간에 어떠한 꽌시가 작용을 하여 쉽게 통과하였는데  그분이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담당자가 온뒤로는 너무 까다롭다고 한다. 쩍하면 상품품질때문에  영업부 직원이랑 공장장이 함께  불려가고  심지어 사장도 불려다녔다. 하지만 제일 큰 거래처여서  큰소리 한번 못내고 공손해야만 했다.

 

나름 상품도 더 신경써서 만들어 가지만 번번히 진땀을 뺐다. 회의할때도 그 회사 이야기가 나오면 다들 표정이 어두워졌다. 품질문제로 일부를 퇴자맞으면 다시 물량을 맞춰야 했기에 직원들을 야근까지 시켜야했고 심지어는 급한 나머지 다른 거래처에 보낼 물량을 먼저 보내주기까지 했다. 

 

어느날 거래처에서 또 사장을 호출했다. 이사님과 차 한잔 하고있던 사장은 골칫거리라는 시늉을 해보이면서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말 가기싫은 표정이었다.  이사님은 우리도 같이 가보자고 했다.  혼자 가기 싫었던 사장은 흔쾌히 승낙했다.  

 

그렇게 나와 이사님, 그리고 과장님까지 사장을 따라 거래처에 가보게 되었다. 

 

큰 거래처답게 회사는 엄청 컸다. 1공장과 2공장으로 나뉘어 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간곳은 1공장이었다.

 

검수팀은 대충 한 10명정도의 직원들이 있었는데  남자는 딱 두명이 보이고 나머지는 다 젊은 여자들이었다. 검수팀장도 여자였다.  우리가 들어서자  직원들은 니들 상품때문에 우리가 개고생한다는 표정이었고  팀장도  웃음기는 하나도 없었다. 검수팀장은 사장에게 불량문제를 마구마구 쏟아냈다. 사장은 말없이 검수팀장이 말을 듣고 있었다. 꼭마치 선생님한테 혼나고 있는 학생 같았다.  

 

대부분의 불량은 도장처리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였다. 도장처리 과정에서 미세한 기포가 들어가있거나 중복으로 도장처리가 되면서 표면이 매끄럽지 못한것들이었다. 사장은 알았다면서  이번에 한국에서 기술자들을 모셔왔기에 다음엔 절대 이런일이 없을거라고 둘러댔다.

 

이야기는 길어졌고 우리는 마치 죄지은 사람 같았다. 이사님은 그런틈을 타서 나에게 지갑을 건네주면서 밖에나가서 시원한 음료수를 사다가 직원들에게 나눠주라고 속삭이듯 말했다. 

 

광동성은 무척 더웠다. 더구나 기온이 습해서 항상 온몸이 찝찝했다. 나는 근처에 있는 작은 상점에 들러 여러가지 음료들을 마구 쓸어담았다. 그래도 거래처에 잘보이려면 넉넉히 사다주어야 했다. 

 

그렇게 낑낑대며 비닐봉투 두개에다 나눠들고 돌아왔다. 한사람 한사람 수고한다면서 나누어주니 그제서야 다들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검수팀장에게도 날씨가 더운데 시원히 마시라고 건네주었다. 이사님은  다음에 납품할 물건은 미리 샘플을 만드어 보여드릴테니 믿어달라고 겉들었다.  검수팀장은 통역하는 나에게 한국어는 어떻게 할줄아냐  나이는 몇살이냐뭐 신기한듯 물어봤다. 그당시엔 중국어와 한국어를 하는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돌아오는길에 이사님은 사장님한테 몇번 더 같이 가자고 했다. 사실 한국사람들은 융통성이 있는 편이었고  중국사람들은 좀 곧이곧대로 하는 편이었다. 이사님과 사장님을 봐도 그랬다. 이사님은 다른사람에게 친해질려고 농담도 하고 어떻게든 마을을 끌려고 친화적인 반면 중국사장은 그런게 절대 없었다. 모든게 에프엠대로였다. 어찌보면  장점이기도 하지만 가끔은 단점일수도 있다.

 

그뒤로 우리는 몇번을 함께 거래처에 갔다. 두번째 같을때도  먹을거리들을 사들고 찾아갔다. 그땐 샘플도 맘에 들어했고 표정들도 밝았다. 심지어 어떤직원들은 나에게  다음에 올때는 뭘 사올거냐뭐 장난까지 쳤다.  중국회사끼린 이렇게 하는데가 없었기에 다들 너무 놀라워했고 즐거워했다.  그렇게 우리는 갈때마다 먹을걸 사들고 가면서 그들과 친해졌다. 물론 그뒤로도 불량품이 나온적이 있었지만  서로 친해지니  말하기도 쉬웠고 서로들 얼굴한번 붉히지 않고 해결했다. 

 

중국사람들은 융통성은 적어보이나 또 그만큼 사람들이 진국이라  이렇게 한번 친해지면 그뒤로는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 중국에서 일해본 한국인들은 꽌시란말을 자주 입에올리는데  그만큼 꽌시가 중요한것이다. 

 

그렇게 중국사장의 골칫거리는 몇번의 노력을 거쳐 원만히 해결이 되었다. 그뒤론 사장이 직접 출마하지 않고 직원들이 다니며 소소한 문제들을 해결할수 있었다. 

 

그뒤로 사장은 이일을 두고두고 고맙게 생각하는것 같았다.  사장이 근사한 횟집에서 한턱 크게 쏘는 바람에 통역인 나도 끼어서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추운 북쪽지방의 촌구석에서  자란 나는 그때 처음으로 회라는걸 먹어봤다 ^_^

 

 


(이야기가 하도 길게 늘어져서 몇번을 수정하며 간략히 적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다음화에 뵐게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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