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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 연재

내가 처음 만난 한국사람들 - 7편

by 빠라밤 2022.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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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하는 중국공장은 자회사였고 홍콩에 모회사가 있었다.

 

내가 처음 회사에 왔을때 잠깐 면접을 본적이 있는데 그때 덩치가 크고 나이가 있는 중국인이 영어를 아느냐고 물어본적이 있었는데  나중에 보니 그사람이  회장이였다. 

 

나는 홍콩사람도 실제로는 처음 봤다. 티비에서는 많이 봤지만 실제로 만나서 대화를 해보기는 회장님이 처음이었다. 회장님은 여자 통역을 데리고 다녔는데 알고보니 한국사람이었다.

 

어느한번은 회장이 공장에 와서 생산현장을 둘러본적이 있는데 통역만 데리고 둘이서 둘러보고 있기에  나는 멀찍이 서서 지켜보고있었다. 

홍콩에서 온 여자통역은 손에 메모지와 볼펜을 들고 회장님이 뭐라고 말할때마다 열심히 받아적었다.  심지어 가끔은 한쪽 무릎을 꿇고 다른 무릎에 메모지를 올려놓고 뭔가를 쓰기도 했다.  그리고는 회장님이 움직일때마다 졸졸 따라다니는 모습이 너무 굽신거린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회장님은 중국표준어을 안쓰고  광동어를 사용했다.  내가 놀라웠던건 이 여자통역이 광동어를 통역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회장님이 이사님과 대화를 나눌때   이 여자분이 전부 통역을 했다. 나는 광동어는 한마디도 못하는지라 그저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약간은 자괴감도 들었고  한편으로는 이 여자분이 너무 대단해 보였다.

 

 

점심 식사자리에서  나한테 일은 할만하냐 여기 생활은 어떠냐 등등 물어보기에  서로 쉽게 친해졌다. 나보다는 나이가 5살이나 많은 누나였지만 둘다 통역이라는 직업때문에  동질감을 느꼈다.  우리는 서로 통역으로서의 역할과 또 통역으로서의 고충에 대해 이야기했다.  통역누나는 나보고 처음 봤을때보다 많이 밝아서 좋아보인다고 했다. 처음 면접볼때 회장님 옆에 있었다고 하는데 그때 나는 너무 정신없어서 이 누나를 기억도 못하고 있었다.

 

나는  아까 뭘 그렇게 열심히 적었냐고 물어보았다.

통역누나는 메모장을 보여주며 설명해줬다. 회장님이 하시는 이야기를 요점만 뽑아서 단어들만 적어두었다고 한다. 그리고 어느 공장을 가던지 현장에 가면 기계이름이나 공정과정이나 등등의 거의 모든것을 물어봐서 다 메모하고 기억해둔다고 한다. 그렇게 해야 통역을 할때 막힘없이 잘할수 있고 회장님을 잘 보좌할수도 있다고 했다. 회장님도 그런 그의 열정을 칭찬하며 항상 자세히 설명해준다고 했다.  

 

통역누나는 한국에서 중국어를 전공했고  홍콩에서 유학까지 하다보니  중국표준어도 잘했고 광동어까지 잘했다. 게다가 영어까지 하다보니 그야말로 만능이었다. 

 

이 누나가 프로라면 나는 걍 아마추어였다. 평소에 메모지도 잘 안들고 다녔고 모든걸 암기로 하려고했다.  그리고 영어도 못했고 광동어는 더 못했다. 광동성은 중국의 하나의 행정구역이지만 여기 사람들은 대부분 표준어보다는 광동어를 사용했다.  우리 공장에서도 대부분 사람들이 광동어를 사용했지만 난 배우려고 하지도 않았다.  이누나 앞에서 난 그저 대학생과 마주앉은 초등학생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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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가 홍콩과 본토를 출장다닐수 있는게 너무 부러웠다. 그때까지만 해도 중국에서 홍콩에 가려면 여러가지로 수속이 복잡했다. 물론 지금도 홍콩에 가려면 통행증이란걸 받아서 가야한다. 나름 번거로운건 사실이다.

 

통역누나는 나한테 잘해보라고 격려하며 홍콩으로 떠났다.

그뒤로도 회장님이 본토에 올때마다 함께 왔다. 난 그 누나가 올때마다 너무 좋았다. 왠지 든든한 아군이 온것같은 느낌이들었다.  그도 그럴것이 통역일을 하면서 받는 고충을  이 누나말고는 어디에 하소연할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누나를 만난뒤로 광동어를 조금씩 배우기 시작했고  영어를 공부하려고 노력했다.

현재는 그때 배웠던 광동어를 다 까먹어서 거의 기억나는게 몇마디밖에 없다. 

영어는 늘 공부하려고 하지만 여전히 진전이 없고 집구석에는 왕초보에 관련된 영어책들만 쌓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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